2021년 10월 27일에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수확의 계절' 특집으로 꾸며진 가운데 박혜란 작가가 게스트로 출연한 장면이 전파를 탔답니다.



박혜란 자기님은 이적의 어머니 이전에 30년간 3천 번의 강연을 하고 13권의 책을 집필하며 어머니들의 멘토로 활약해온 인물. 세 아들을 모두 서울대에 보낸 뒤 쓴 자녀교육서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의 저자로 유명하다.  이어 이적의 아버지이자 박혜란 작가의 남편역시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출신이라고 하는군요.


이적의 어머니이자 박혜란 작가는 아이들 학창시절에 한 번도 학교를 찾아가지 않았고, 심지어 막내 아들이 고3일 때 바빠 아들이 스스로 도시락을 싸고 다니는 처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잘 자라 각각 건축가, 가수, 방속국 PD라는 직업을 선택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날 박혜란 작가는 "저는 박혜란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성학자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렸는데 요즘은 그냥 이적 엄마에다가 작가 이렇게 불리고 있는 그냥 할머니다"라며 소개했답니다.


이에 유재석은 "자녀 교육서를 어떻게 쓰시게 된 것이냐"라며 질문했고, 박혜란 작가는 "막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노하우를 책으로 써보지 않겠느냐'라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았던 것이다. 사실은 그전부터 '너무 애들을 공부, 공부하니까 여유를 가지고 품을 넓게 가지고 세상을 보고 애들도 공부 하나에만 집중 시키지 말자'라는 뜻을 모아서 강연을 많이 다녔던 것이다"라며 설명했답니다.


강연을 통해 전하고자 한 바를 자녀교육서로도 출간하게 됐다는 것. 

조세호는 "어디서 이야기하면 거짓말이라고 할 거 같은 마음이다"라며 감탄했답니다.


아울러 유재석은 "당시 아드님 세 분이 반대했다더라"라며 궁금해했고, 박혜란 작가는 "'어머니가 언제 저희들을 키우셨습니까'라고 했던 상황이다. '우리가 알아서 자랐지 키운 게 아니다'라고 하더라. '내가 언제 너희들을 키웠다고 쓴다고 했냐. 믿었더니 자랐다는 거다'라고 했던 것이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답니다.


이어 "마침 그때 저희 남편이 사업 실패로 어려웠다. 이적은 막 데뷔를 하던 때였다. 이적이 어린 마음에 '내가 가장이 돼 드릴까요?'라고 묻더라. 내가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의 발목을 왜 잡겠냐. 그래서 내가 가장의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책을 쓴 거다. 세상에는 끝이다 생각했을 때가 새로운 출발이 된다. "고 덧붙였다.


이어 자기님은 "그 책을 써서 돈이 엄청나게 들어오니까 애들이 보면서 배 아파 하더라. 돈을 하나도 안 들여 키웠는데 엄마가 자기들 얘기를 써서 떼돈을 벌었잖나. 진짜 배아파 하더라"고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박혜란 작가는 자녀 교육법에 대해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네 가지 원칙을 세웠죠.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기, 과외 안 시키기, 마음껏 놀게 하기, 촌지 주지 않기“라고 말하며 “과외 시키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한 번도 안 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공부하라는 말, 정리하라는 말 등 자녀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어 자신에게 자녀 교육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적당히 사랑하세요’라며 아이를 믿고 인내하면서 아이들의 적성을 스스로 드러내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강연한다고 합니다.


유재석은 "'유퀴즈' 섭외 이후 가족 단톡방이 굉장히 활성화가 됐다고 하더라"라며 물었으며, 박혜란 작가는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단톡방에 올렸던 것이다. '여러분 의견을 수렴합니다'라고 했다. 다들 빼놓지 않는 프로니까 나가시면 재밌을 것 같고 부담 별로 없을 거예요. 워낙 재밌게 두 분이 말씀하시니까 어머니는 웃기만 하시면 된다'라고 하던 것이다"라며 털어놨답니다.


자녀들에게 가장 많이 해왔던 이야기로 그는 “엄마는 너무 바빠서 너희들을 일일이 챙겨 줄 수 없다. 알아서 거라”라고 말했다. 


아들 이적은 어머니에 대해 “자율적인 영향을 많이 주셨다. 어렸을 때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하교 때 어머니들이 데리러 오시는 데 우리 엄마는 한 번도 안 오셨다. 그때는 그게 섭섭하다기보다 ‘우리 엄마 안 와’ 하면서 영웅심리를 느꼈다. 뿌듯했다. 엄마 안 온 아이들과 물놀이를 했다. 해방감 같은 것도 느꼈다”고 자랑했다.


그 말에 박혜란 작가는 “아파트 안의 학교라 거리가 짧다. 사실 친구 우산을 같이 쓰자고 해야 하는데 그게 자존심이 상해서 싫으면 짧은 거리, 집에 뛰어와서 샤워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아들인 이적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숙제로 종이에 피아노 건반을 그린 후 소리를 내며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쳤다.고 하는데요.


그걸 본 박혜란 작가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냐 묻고 동네 피아노 학원에 3년 동안 다녔다고 합니다. 이후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으로 먹고살겠다고 선언했다고 하는군요.


가수 이적은"어머니는 원래 신문사 기자였다"며 “어머니가 39살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셔서 널찍한 책상서 책을 많이 보셨다”며 “어머니가 책을 많이 보셔서 영향을 받은 거 같다” 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박혜란 작가는 1968년 동아일보에 들어가 6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다고 하는군요.


이어 “엄마는 공부하라고 단 한 번도 시키신 적이 없어요. 엄마께서 스스로 공부를 하셨죠”라고 섦명했습니다.


이어 박혜란 작가는 막내아들인 이동윤 PD가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두고 중국에 초빙교수로 떠나기도 했다고 하는군요.


드라마 ‘최고의 사랑’, ‘신들의 만찬’, ‘여왕의 교실’, ‘운명처럼 널 사랑해’, ‘가화만사성’,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세요’ 등을 연출하였습니다.


현재 건축가이자 건축과 교수인 큰아들 이동훈 씨에 대해 “큰애 중학교 3학년 때 밤 10시면 자던 애가 밤늦게까지 ‘산업디자인의 세계’란 프로그램을 혼자 보더라고요. 다음 날 자기는 디자인을 하면서 살고 싶다며, 데생을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래서 동네 아파트에 사는 미대 1학년생 누나한테 3개월을 배우게 했죠. 아이가 그다음으로 한 말은 ‘엄마, 나 아름다운 집을 짓고 싶어’ 였어요. 큰애는 그렇게 자기 적성을 찾고서 건축학과에 입학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여성학자이자 작가 박혜란은 경기도 수원 출생, 1946년 생, 76세이며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대학 대학원을 다녔으며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