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배우 최지희가 17일 을지로 백병원에서 타계했다. 최지희는 알츠하이머 등 오랜기간 지병으로 투병해오다 이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영화배우 겸 제작자 한지일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60~70년대 톱스타 최지희 선배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며 고인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던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출생하였고 6세 때였던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하는 8.15 조선 광복을 일본 오사카에서 목도하였으며 이듬해 1946년에 일가족과 동반으로 고국에 귀국했다.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했던 경상남도 하동군에 거주하였고 하동국민학교 3학년 시절이었던 1948년에 비로소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본격 취득하였으며 이후 1958년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경남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어 같은 해 1958년 영화 ‘아름다운 악녀’의 주연으로 영화배우 데뷔했다.


1958년 경남여고를 졸업한 해 영화 ‘아름다운 악녀’의 주인공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그는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이미지로 1950~1960년대 젊은 여성들의 욕망을 대변한 스타였다. 신상옥 감독의 ‘자매의 화원’(1959)에서 언니(최은희)의 연인을 가로채는 역할을 맡았던 그에게 매스컴은 ‘야성적인 체취를 발산하는 여배우’ ‘원시림에서 빠져나온 듯한 황홀감을 안겨주는 여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성난 능금’(1963) ‘말띠 여대생’(1964) ‘연애졸업반’(1964) 등을 통해 그는 기존 관습에 짓눌리지 않고 자기 삶에 능동적인 ​‘모던 걸’의 이미지를 스크린에 각인시켰다.


영화 '김약국집 딸들'로 1964년 제1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제3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2011년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최씨는 1970년대 박노식과 호흡을 맞췄던 ‘용팔이 시리즈’ 등 50여편의 액션 코미디에 출연했다. 생활고를 해결하며, 배우로서 작품 영역을 넓히기 위한 것이었다. 자신과 인연이 있는 영화 제작자와 감독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며 다작을 한 그에게 영화인들은 ‘의리의 최지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최씨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에 이혼 직후부터 손을 대기 시작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사업가로서 크게 활약했다. “선배님들 중에 배우 체면 때문에 검은 안경 쓰고 스카프 두른 채 먹을 것이 없어서 입이 새카맣게 탄 분들을 많이 봤어요. 저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빚은 지지 말아야지 해서 장사를 한 것이지요.”

 

한편 최지희 씨는 “내가 밝고 처신이 활달해 걱정거리가 없는 여자로 다들 생각하지만 나의 깊은 마음속은 언제나 고독했다. 그렇다고 그걸 비관하고 또 누굴 원망하며 살지는 않았다. 지난 것은 깨끗하게 털고 내색을 내지 않고 살아왔고 그런 외로움을 일에 빠져 잊어버릴 수 있었다. 덕분에 오히려 씩씩하게 사업을 하며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최진희 씨는 “연예인들이 수시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볼 수 있는데 나는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배우나 연예인들이 대중 속에 살면서 인기를 누릴 때 즐겁고 행복하지만 그건 언젠가 거품처럼 사라진다. 인기가 사라지고 시선이 떠나면 텅 빈 공간에 버려진 사람처럼 방황하면서 고독과 싸워야 한다. 극복하지 못하면 제대로 살아가지 못한다.”면서 “한 때 화려하게 살던 분들이 어렵게 사는 모습으로 나타날 때 나는 지갑을 털어주면서 우울한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내 스스로를 돌아보면 나의 현실도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고독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연예인의 고독에 대해서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1971년 영화 ‘케이라스의 황금’에서는 의상감독을 맡았고, 이듬해부터 패션 디자이너로도 활동했다.


1974년 미국 유학을 떠나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철학과)를 취득했다. 귀국 후엔 영화배우 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패션 디자이너로 활약하다가 1989년 영화 '잡초들의 봄'의 조연으로 영화배우 분야에 복귀했다.


김기영 영화감독은 “영화인 중에는 인생도 영화처럼 산 분들이 있다. 최지희 여사도 빼놓을 수 없는 그 중의 한사람이다. 성품이 솔직담백하고 분명하다. 둘러대고 꾸미고 감추는 것을 싫어해 남자 이야기가 나오면 부정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털어놓고는 해 그의 고백을 통해 수시로 이름난 남자들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1988년 코미디언 쟈니 윤과 '서울 프리올림픽 쇼'를 제작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자니 윤의 제안으로 KBS와 공동으로 준비한 이 프로젝트가 크게 성공하면서 뒷날 KBS에 자니윤 토크쇼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일생을 영화배우 겸 영화 의상감독과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해오다 1994년 출연한 KBS 드라마 '인간의 땅'이 자신의 유일한 TV 드라마 출연작이 됐다.


10여년 전까지만해도 건강한 모습으로 황정순, 최은희, 이민아, 전계현, 신영균, 이대근, 김혜정, 태현실 등 지금은 고인이 된 영화계 원로들과 종종 어울렸다. 


빈소는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9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