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진영이 세상을 떠난지는 어느새 12년이 됐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를 추억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12주기를 맞춘 애도물결도 이어지고 있다.

 


팬들은 여전히여전히 아름다운 그녀 추모합니다”, “영원한 나의 첫 번째 여배우”, “너무 아름다웠던 배우 고 장진영을 기억하며”,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등 추모를.

 

찬란하게 빛나던별’ 하나가 국화꽃 향기 속에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짧은 생을 영화배우로 치열하게 살았던 아름답고 젊은 영혼이 꽃향기를 타고 하늘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녀 나이 서른 일곱이라지요....

 

칠월칠석 단 한 번 만난다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처럼 아름답고 애절한 두 사람의 부부의 인연 또한, 가는 길 지켜보는 많은 이를 눈물짓게 합니다.

 

두 분의 아름다운 사연은 마치 우리들이 18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런 지순(至純)한 사랑이 이 각박한 21세기에도 존재할 수 있을까? 이들 젊은 부부의 숭고한 러브스토리는 내 마음 속에 잔잔한 메아리가 되어 길게 울려퍼집니다.

 

그녀는 일과 사랑 그리고 사람에 대한 따사로운 마음가짐을 우리에게 남기고 떠났습니다. 나는 그녀의 아름답고 고결한 삶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와 직업에 대한 존엄성을 떠올리게 됩니다. 특히나 오늘 날의 국회상황은예의’라는 단어가 얼마나 우리 사회, 우리 국회에 절실한 것인가를 반추하게 합니다.    

 

인터넷 세상에서도 故 장진영님을 추모하는 글이 넘쳐나고 있다더군요. 그녀의 농익은 연기력과 영화처럼 아름다운 삶에 대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사이버공간을 모처럼 훈훈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듯 합니다.

 

‘연기에 대한 열정, 진정한 사랑 그리고 어려운 이들에 대한 기부.’

 

길진 않았지만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녀 장진영의 삶은....

 

인터넷에 울려 퍼지고 있는나를 잊지 마세요..” 라는 그녀의 육성 메시지가 귓가에 맴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장진영님. 아마도 우리는 당신의 바람과 달리, 영원히 당신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 메마른 세상에 촉촉한 물기를 적셔주고 갔습니다. 또한 당신의 러브스토리는 마지막까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이름은 잊을 수 있어도, 당신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고 장진영은 2009 9 1일 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는데요. 고 장진영은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한지 1여년 만에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어요. 장진영의 위암 투병 사실은 2008년에 대중들에게 알려졌으며.

 

사망 그때 당시 곁에서 같이 한 남편 김영균 씨와의 러브스토리도 세상을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했어요. 김 씨는 장진영의 암투병 사실을 안 후오늘부터 당신의 남자가 되겠다”며 사업을 접고 지극정성으로 간호한걸로 알려졌습니다

 

두 사람은 미국에서 치료를 받던 2009 7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한국으로 와서 혼인신고를 했지만 3일만에 사별했어요.

 

장진영의 남편 김모씨는 장진영이 죽기 약 한 달전인 지난 7 26일 미국 라스베가스 레바다의 한 교회에서 둘 만의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장진영이 죽기 사흘전(8 28)에 혼인신고까지 마쳐 법적인 부부가 되었습니다.

 

혼인신고를 한 8 28일은 장진영의 몸이 최악의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할 사람이 없건만 남편은 사랑하는 장진영의 부군이 되어 '가는 길에 그녀의 힘이 되고 싶었고, 가슴속에 담아두고 싶었다'며 혼인신고를 마쳤습니다. 이런 사랑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애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남편 김모씨는 병원에서 이미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족들조차 모르게 장진영과 결혼을 했습니다. 단지 장진영을 사랑한다는 그 하나만으로 장진영과 부부가 된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한달 후면 죽을 운명의 여자와 결혼을 올릴 남자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평생의 동반자가 되겠다고 청혼한 김모씨를 보며 장진영의 마음은 착찹했을 것입니다.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 <국화꽃 향기>처럼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떠나야 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편 때문에 장진영은 하늘로 떠나는 길이 외롭지 않았을 겁니다. 위암말기 환자의 고통, 정말 죽을만큼 힘들었지만 남편때문에 장진영은 죽는 그 순간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사랑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은 모든 고통도 다 이기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꿈꿔보는 한 편의 로맨스를 남기고 이승을 떠난 장진영은 하늘에서 남편 김모씨를 지켜주며 기다릴 것입니다.

 

1972년 장진영은 1992년 미스코리아 충남 진 출신이고, 1997년 드라마 '내 안의 천사'로 데뷔했습니다.  2000년 김지운 감독의반칙왕’을 통해 충무로에 본격 입성한 뒤 영화싸이렌’, ’소름’, ’오버 더 레인보우’, ​’국화꽃 향기’, ’싱글즈’, ’청연’,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에 연달아 출연했네요 2007년 드라마로비스트’가 유작입니다

 

그러다 2001년 영화소름’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스페인 시체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하며 충무로의 대표 여배우로 우뚝 섰다.

 

 

 

故 장진영은 생전 투병 생활 중에도 모교인 전주중앙여고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선행을 펼쳐왔다.

 

고 장진영의 아버지 장길남 씨는 딸을 기리는 마음으로 2010년 계암장학회를 설립했어요.2011 5월 전북 임실에 장진영 기념관도 만들어졌습니다.

 

오늘 밤, 하늘에는 당신을 닮은 별 하나가 유난히 찬란하게 빛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