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KBS2 ‘대화의 희열3’이 마지막 게스트 ‘대한민국 처음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과의 만남을 끝으로, 시즌3를 종료했어요. 최종회를 장식한 박준영 변호사는 승리 보다는 패배 확률이 높은 재심 사건에 계속해 도전하는 이유, 지연된 정의를 바로잡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헌신적인 행보 등을 들려줘 관심을 집중시켰네요. 솔직하고 재치있는 입담으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한다고 하네요. 



박준영은 첫 시작은 아무런 연고가 없던 수원이었다며 "성적이 안 되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거의 밑바닥이었다. 저도 나름 똑똑하단 얘길 들었다"라며 "서울 쪽에도 원서 냈는데 한 곳도 불러주지 않았다. 로펌뿐만 아니라 대기업 S그룹 법무팀에도 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취업도 어려웠고, 친척이나 친구조차도 저한테 사건 안 맡기는 걸 경험했다. 왜냐면 서울에 있는 이름 있는 대학 나오신 분들, 판 검사 출신 등 능력 검증된 분들 많은데 왜 저한테 맡기겠나. 인생의 중대사인데. 사회 경험도 없고"라고 털어놓았다.


박준영 변호사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자들의 진실을 밝히는 ‘재심 전문가’로 유명하다.


박준영 변호사는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권상우, 영화 ‘재심’ 정우의 실제 모델이 된 인물로 유명한데요‘수원 노숙소녀 사망사건’, 

영화에서는 배경, 설정 등 각색이 조금 되었다고 하네요. 드라마 방영 후 전국에서 도와달라는 연락이 온다고 하네요. 그리고 박준영 변호사의 아버지 직업은 장의사이며 장의사와 변호사는 전혀 다른 직업이지만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남의 불행으로 먹고산다는 것이 같다고 했습니다. 알고보니 할아버지가 장의사였고 아버지가 그일을 물려받으셨다며 자신도 변호사가 되지 못했다면 장의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하네요.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낙동강변 살인사건’ 등이 그가 맡았던 재심 사건들.


그런가 하면 박준영 변호사는 무료 변호를 하다 파산을 하고, 그를 도우려는 사람들의 스토리 펀딩으로 5억 6천만 원을 모은 과거도 이야기했어요.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냉난방 장치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13평 사무실의 월세를 수개월째 내지 못하고 사무실 안에는 정수기 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의 마이너스 통장의 대출액은 1억원 가까이 쌓였고 휴대전화에는 대출 만기를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다수였다고 한다.


그는 이것에 관해서“세상이 더 좋아졌으면 하는 사람들의 마음,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어요. 이와같은 마음들이 모여 박준영 변호사는 계속해 재심 사건을 할 수 있었다고. 

박준영 변호사는 “행복하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후원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며 “사법 시스템 운용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의 권리 침해를 막는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금전적 상황이 좋아졌냐는 질문에, 박준영 변호사는 “지금도 썩 좋지는 않다”며, 통장 잔고와 월세 상황을 오픈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한결같이 무료 변론을 고집하는 이유와, 앞으로 목표에 대해 밝혀 MC들을 감동하게 만들었다.


재심을 한다는 것은 이미 판결이 난 사건을 뒤엎어야 하기에 더 힘들죠. 그럼에도 그가 재심에 계속 도전하는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좋은 일도 생기지 않기 때문. 그는 자신보다 먼저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구명 운동을 했던 삼중 스님이 있었기에 재심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어요. 그는 “부정적인 결과가 예상되면 대개 사람들은 나서지 않고 시작도 안하려고 하는데, 설사 결과가 실패라 하더라도 그게 또 다른 도전의 힘이 될 수 있다”라며, 진정한 용기에 대해서강조했어요.


박준영 변호사는 1974년 10월 29일 생으로 올해 나이 48세로 고향은 전라남도 완도군 출신이다. 학력은 노화종합고등학교 졸업, 목포대학교 전자공학과 중퇴이다. 현재 '변호사 박준영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이다. 가족 관계는 아내, 자녀 3명이 있습니다. 


2002년 사법시헙에 합격하였고 사법연수원 35기 수료했다. 수료 후 수원시에거 변호사 개업을 했고 2007년에는.


박준영 변호사는 과거 노화도 섬마을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어릴 적 박준영 장사를 하셨던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과학자의 꿈을 가진채 성장하던 중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하더니 중학교 때는 수석으로 입학할 정도로 공부에 재능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엄마가 중학교 때 돌아가시면서 삐뚤어졌고 고등학교 때는 문제아였다고 하네요. 고등학교 입학 후 자퇴를 했고 이후에는 가출을 해서 서울, 인천 등에서 떠돌이 생활을 했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공장, 나이트클럽 웨이터 등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고등학교 졸업장을 제발 따달라 부탁을 해서 다시 귀향을 했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광고 모델, 화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다만 고등학교 시절 싸움도 많이 했던 박준영은 생활기록부에 '준법정신이 미약하다'라고 써져있을 정도로 여전히 말썽을 저지르는 아이였지만, 다행히도 목포에 위치한 목포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약자들을 위해, 지연된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싸우는 박준영 변호사는 그의 묵묵한 신념과 의미 있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