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싣고'에 의뢰인으로 출연해 47년 동안 잊지 못한 초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을 찾아 나선다. 그는 과거 살았던 인사동에서 MC 김원희, 현주엽을 만났지만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기 싫다"고 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조관우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가 있던 큰 집에 얹혀살았다. 아버지가 해외공연으로 늘 자리를 비워 더 외롭고 힘들었다며 그때의 감정이 노래할 때 한으로 묻어나온 것 같다고 했다. 이랬던 그에게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 와서 만난 담임 교사였다. 조관우는 의지할 곳 없던 자신을 살갑게 대해준 교사를 "아버지라 부르고 싶을 정도였다"고 떠올렸다. 특히 조관우는 이 교사가 어릴 때 헤어져 얼굴도 기억나지 않던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뒀다며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한편 어머니와 다시 만난 날, 함께 인사동 떡집에 갔었다는 조관우는 그 이후로 떡을 입에 대지 않았다는 슬픈 사연도 공개 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던 조관우에게 짧지만, 잊을 수 없는 어머니와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신 홍석관 선생님! 과연 조관우는, 늘 바쁘고 엄하셨던 아버지 국악인 조통달 명창에게서 느끼지 못한 아버지의 정을 느끼게 해주신 홍석관 선생님을 47년 만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조관우는 홍석관 선생님과 상봉하여 눈물을 흘렸다. 홍석관 선생님은 "나를 기억해주다니 고맙다. 멋있게 컸구나. 너도 이제 나이가 많구나. 반갑다. 나도 영광이다"며 조관우의 손을 잡고 함께 눈물을 훔쳤다.

홍석관 선생님은 이어 조관우가 찾을 때 어땠냐는 김원희에 "보람을 느꼈다. 47년이다. 조그마했던 10살 아이가 내 이름을 외우고 있다니. 그리고 나를 찾다니.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홍석관 선생님은 "엄마 좀 만나니. 너 만나면 물어보고 싶더라"고 물으며 어머니를 만나게 해줬던 날의 비하인드를 밝혔다. 조관우는 "가끔 뵀다"며 퍼즐을 맞추는 듯 그날을 함께 회상했다.


김원희는 "41년 6개월을 하시지 않았냐. 많은 제자들이 있는데 조광호를 기억하시냐


"고 물었고, 홍석관은 "기억한다.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스타일이었다. 성적 공개를 하면 음악 성장만 좋았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홍석관 선생님은 조관우의 아버지 조통달 역시 자신을 만나러 왔다고 밝혀 놀라움을 더했다.


조관우는 "사실 아버지 크게 원망하면서 컸다. 아버지는 국악과 소리와 제자, 선생님들만 아시고 살아가는 줄 알았다. 저를 잊은 채. 아버지가 저 몰래 선생님도 만나셨다는 걸 오늘 알았다. 


이어 조통달의 영상편지가 공개됐다. 조통달은 "항상 그늘졌던 너를 밝게 해준 선생님을 만나러 찾아가곤 했다.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다. 엄마 아빠가 제일 필요하던 시기에 함께 있지 못하고 보듬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훌륭한 가수로 커줘서 자랑스럽고 고맙다 아들아"라며 감동을 안겼다.


자녀들 학교에 찾아가본 적 없는 제가 오히려 창피하다.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감동을 더했다.


1994년 1집 앨범 <my first story> 데뷔 이후 완벽한 음악에 대한 고집과 열정 그리고 자신감으로 대표되는 가수 조관우 본명 조광호 이며 1965년 8월 3일 생인 조관우 나이 2021년 기준 57살


조관우는 국악집안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국악을 접했는데요, 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가야금을 전공한 조관우는 1982년에 가야금 연주자로 첫 데뷔하였습니다. 


시간의 흐름속에서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그의 노래와는 다르게 두번의 이혼, 파산, 성대결절 까지 수많은 시련들로 가득했던 굴곡지고 치열했던 그의 인생을 꼼꼼하게 준비했습니다.


조관우에게 첫번째 결혼 상대 였던 아내(부인) 장연우는 사랑하는 아내 였을뿐만 아니라 음악적 스승 이었고 파트너 였었습니다.


1993년 SBS 공채 탤런트 출신 장연우와 첫번째 결혼 했었던 조관우는 아들 조휘 그리고 조현 을 품에 얻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갔었지만 2003년 이혼 이유 성격 차이 를 사유로 밝히며 이혼 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혼 후에도 친구처럼 지낸다고 하며, 2005년에 발매한 조관우의 EP 앨범 "가을의 기적" 에서 다시 음반 작업을 함께 했다.


첫번째 아내(부인) 장연우와이혼 한 이후 7년 만에 10살 연하였던 손혜련과 두번째 결혼 소식을 전하며 재혼 했었던 조관우


하지만 결혼 생활 동안 타인에게 자산 관리를 맡기며 15억 원 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지게 되었던 조관우는 결국 생활고 경제적 어려움을 이혼 이유 사유로 다시 이혼 했습니다.


“빚이 이자 때문에 계속 불어났었어요. 아기 분유값도 책임지지 못했어요 정말 돈이 없었고 너무 힘들었죠."


"지금 집도 절도 없어요. 집 2채가 다 경매로 넘어갔어요. 다 압류가 걸려서 못 쓰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빚을 남기는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은 파산 신고를 하라고 하지만 다시 일어서서 빚을 해결할 겁니다."


생활고에 이어 성대결절 까지 왔었던 시련들로 극단적인 상황까지 생각했었다는 조관우


“성대 잃었을 때는 제게 사망선고와도 같았어요 정말 그때는 그냥 ‘죽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상황을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소리를 내지 말라고 했는데 노래 하지 않으면 가족이 굶어 죽으니까. 목소리를 찾던지 못 찾아서 굶어 죽든가 둘 중 하나였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