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 오후 7시께, 2002년 월드컵 한일전에서 큰 활약을 보였던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암투병 끝에 사망했다.







일본에서도 유상철 전감독의 사망소식을 다루며 "오랫동안 활약한 유상철 전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면서 "유 전 감독은 한국 대표팀과 인천 감독을 역임한 한국 축구의 레전드"라고 보도했다.


빈소는 아산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유상철 감독은 2019년 11월 본인의 몸상태를 세상에 알렸는데, 당시 췌장암 4기 였습니다. 


이 유상철 감독이 앓았던 질병인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기에 조기 발견율이 10%이하로 매우 낮습니다. 췌장암에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증상은 복통이며, 황달, 식욕감소, 체중감소 등의 증상이 나타 날수 있습니다.

                               

이외 지방변, 회색변, 식후통증 등의 증상을 들 수 있다고 하네요.


유상철 감독의 팬과 축구계는 전체가 충격에 빠졌는데, 유상철 감독은 투병중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까지 벤치에 앉았다고 합니다.


인천을 극적으로 잔류시킨 유상철감독은 2020년 1월 인천 감독을 내려놨습니다.


유 감독은 이후 항암 치료를 이어나갔습니다. 코로나19 여파가 이어지기는 했지만, 예정대로 치료 스케줄을 소화했습니다. 확실히 운동을 했던 몸이라, 힘든 항암 치료를 씩씩하게 이겨냈습니다. 물론 고열로 몇차례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하는 등 힘든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6월, 당초 예정보다 한번 더 진행된 마지막 13차를 끝으로 항암치료를 마쳤습니다. 검사결과는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암이 줄어들었습니다. 


이전에 전했던 근황에서 이천수, 최진철, 송종국, 이운재 등 2002월드컵 멤버들과 만나 "같이 고생했던 친구들, 후배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조금이나마 내가 아팠던 것을 잊을 수 있었다"며 심경을 전했었던 유상철


"얼굴이 점점 좋아지시는 거 같다"라는 이천수의 말에 "살이 쪄서 그런가. 배하고 얼굴만 찐다. 배꼽이 깊어졌다"며 웃음을 전하기도 했었지만, "항암치료를 하는 게 보통이 아니다. 버티는 게 진짜 힘들다. 나도 맞고 나면, 안 맞아본 사람은..(잘 모른다)"며 힘겨운 투병생활을 고백했었습니다.

                                 

이후 훈련장이나 경기장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지난해 JTBC 예능프로그램 '뭉쳐야산다'에 출연해 "많이 호전됐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더 의지를 갖고 치료를 받는 중이다"라며 근황을 전했다.


1월 12일 유상철 감독은 갑작스럽게 두통을 호소했고, 진단 결과 뇌쪽으로 암이 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상철 감독은 씩씩하게 잘 이겨냈고 2월 말부터는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집에서 통원치료를 이어갈 정도로 좋은 상태가 되었지만


최근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었습니다. 


최근 뇌압이 높아져서 병원에 입원하였고, 집중적인 케어를 받았는데 유상철 감독은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은 국민들과 축구팬들이 그리워 할 것이고 그 이름 세글자 "유 상 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고통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상철 감독님은 1971년 10월 18일생으로 올해 51살의 나이입니다. 고향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폭발적인 힘과 정교한 기술력의 조화로 대표되었던 탁월한 밸런스 유상철 키 185cm, 78kg 몸무게 이며 뜨거운 열정과 노력으로 세상의 인정과 사랑을 이뤄냈던 축국 선수 이자 감독 이었습니다.


2002 월드컵 당시 유상철 감독은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7경기에 모두 나섰으며, 특히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선 후반 8분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기록했다.


그는 교체 선수가 투입될 때마다 계속해서 포지션을 바꿀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였다. 유상찰 이후 대한민국 역사상 유상철과 비슷한 수준의 멀티플레이를 보인 선수는 없다고 전해진다.


승부욕이 매우 강했기에 코뼈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경기에 출전해 결승골을 터뜨리며 영웅이 되기도 했지만, 때론 너무 강한 승부욕으로 선수들과 마찰을 벌인 적도 종종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