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병이 김병조와 뽀식이 이용식의 평행선 같이 닮은 삶이 아픔과 감동을 안겼습니다.


3일 밤 방송한 TV CHOSUN '스타 다큐 마이웨이'에서는 1980년대 '뽀뽀뽀'의 히어로 '뽀병이-뽀식이' 콤비 개그맨 김병조와 이용식이 30년 만에 해후했습니다.







영상 바로보기 서로를 만나기 직전. 김병조는 "건강하지? 보고 싶어"라며 이용식을 그리워했고, 이용식은 "정말 기대가 됩니다"라며 만남을 고대했습니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아침마다 '뽀뽀뽀'로 동네 아이들을 TV 앞에 다 모이게 한 환상의 듀오입니다.


뽀식이 이용식은 귀여운 외모와 물의 없는 깨끗한 이미지로 80년대 당시 'CF의 제왕'으로 군림했습니다.

                         

당시 유명 제과와 6년 전속 모델로 활동하는 등 사생활 적으로도 모범을 보인 개그맨이었습니다.


'뽀뽀뽀' 이후 김병조는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일요일 밤의 대행진'의 메인 MC이자 간판스타로, 유행어 제조기로 톱클래스 인기를 모았습니다.


당시 "나가놀아라~" "지구를 떠나거라~~" 등의 유행어와 함께 시사를 섞은 풍자 코미디를 소화하며 개그계의 브레인으로 각인됐습니다.


뽀병이 김병조는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이용식에 대해 "자기 역할에 아주 충실하고 그걸로 즐거워한다. 방송에서도 지금도 보면 한결같다. 어린 시절의 마음을 잃지 않은 드문 사람이다. 보고 싶은 친구이자 그리운 친구다"라고 말했습니다.

                              

뽀식이 이용식은 "김병조 씨는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 오른손에는 항상 뭐가 들려 있게요? 볼펜이 들려있어요. 왼손에는 꼭 메모지가 있는데 메모지가 없으면 흰 것만 보이면 찾아서 아이디어 생기면 자꾸 쓴다"라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멋진 풍광 속에서 30년 만에 해후한 두 사람은 "나 눈물 나려고 그래"라며 서로의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병조는 "실제로 보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보니까 짠하네"라고 반가워했습니다.


이용식은 "살다보니까 좋은 사람은 만난다. 그냥 만나는 게 아니라 삶의 한 페이지처럼 만난다"라고 감격했습니다.


김병조는 "우리 만난지 30년 넘었겠다. 우리가 1981년 5월 뽀뽀뽀를 시작했다. 뽀뽀뽀 키즈가 최소 50살이다. 난 뽀뽀뽀 대본 꿈을 40년째 꾼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용식은 "인생은 길지 않다고 하지 않지만 옆에서 내가 하나라도 더 닮아야겠다는 사람은 병 조형뿐이었다. 이걸 나는 누구한테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런 기념으로 우리 딸 수민이 결혼식에 주례 부탁한다"라고 웃었습니다.


김병조는 "내가 주례 안서면 서운하다. 꼭 서겠다"라고 약속했다. 30년이 흘러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김병조 집을 찾아 차를 나눴다. 김병조 집에서 심도 깊은 서적과 차분한 분위기, 검소한 생활을 느낀 이용식은 "여기에 들어오면 아무리 나쁜 존재라도 사람이 돼서 나가는 곳"이라며 "우리 집 내 서재도 보여주고 싶다. 선데이 서울, 안 보고는 못 참아 등의 책만 가득하다"라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김병조는 "우리 집에서 이용식 씨가 차를 마신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뚱뚱한 배 때문에 주인 내외 자리를 차지한 이용식은 "자리를 바꿔 앉은 것은 주인과 손님이 구별 없는 친한 사이?라는 건 아니고, 제 배가 접히지 않아서 뒤에 이 소파가 없으면 난 발라당 넘어진다"며 짓궂은 멘트를 던졌습니다.


직접 차를 우려준 김병조 아내가 자신의 찻잎을 한 개 거둬 김병조에게 덜어주자 "과유불급, 여기서 이 말을 배운다"며 다정한 멘트로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김병조 아내는 "남편과 이용식의 공통점은 정말 착하다는 것과 가정적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두 사람은 한쪽 눈을 실명한 닮은꼴도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김병조는 "저는 중심성 망막 출혈이라고 머릿속 큰 핏줄이 터졌다. 고치기 어렵다고 해서 통증만 없애달라고 했더니 시신경을 끊거나 아플 때마다 진통제를 맞거나 선택하라고 하더라. 전국을 다니면서 강의를 해야 하는데 진통제 맞으면서 강의한다는 건 힘든 일이라 시신경을 끊어달라고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용식은 망막혈관폐쇄 진단으로 한쪽 눈을 실명했다고 밝혔는데요. "밤낮 없이 방송 녹화를 하다보니 피로가 쌓이더라. 거기에 친구를 만나 술까지 마시니까 몸 상태가 안 좋아졌다. 그 때문에 눈을 실명하게 됐다"고 이유를 털어놨습니다.


이어 "서로가 같은 프로그램을 오래 하고 개그맨 톱 자리에 비슷하게 올랐던 우리가 아픈 것도 똑같으니까 같은 철길에 왼쪽 오른쪽만 다르지 같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치 고도 얄궂은 운명이다"라고 말하며 탄식했습니다.


이용식은 "높은 곳에서 얼른 내려와 어느 수준의 인지도로 쭉 가는 개그맨이고 싶다"며 "당대의 사람들이 알아주는 개그맨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고, 김병조는 "데뷔해서 많은 사랑을 여한 없이 받았고 많은 분들에게 선인들의 지혜를 많이 알려드려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제 소망이기도 하고 제 뒷모습이길 바란다"라고 희망했습니다.


이용식은 1952년생으로서 고향 출생지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출생이랍니다. 


1975년 MBC 1기 코미디탤런트로 데뷔 한 이용식은 웃으면 복이 와요’, ‘일요일 밤에 대행진’, ‘소문만복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등 꾸준하게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특히 MBC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를 19년간 진행하며 ‘뽀식이’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김병조, 1950년 5월 23일.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신평리 거마마을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75년 TBC의 개그 프로그램 '살짜기 웃어예'를 통하여 데뷔하였다.

1980년 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 MC를 맡았다. 이 프로그램이 훗날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이어진다. <일요일 밤의 대행진>은 콩트와 슬랩스틱 위주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아닌 뉴스 보도 형식의 개그로 일요일 프라임 타임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즉, 대한민국 최초로 TV에서 시사 개그를 선보였다.


현재 김병조는 조선대학교 특임 교수로 24년간 명심보감 강의를 전파 중이며 이용식은 최근 딸과 함께 방송 활동을 재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