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연자가 10년 동거한 소속사 사장과 올 가을 결혼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8일 방송에서나온 SBS 플러스 예능프로그램 "강호동의 밥심"에는 김연자가 게스트로 출연했네요


김연자는“서로 의지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결혼까지 가는 것은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하고는 싶은데 자꾸 미루게 되더라. 코로나19가 좀 잠잠해질 것 같은 올 가을쯤 결혼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연자 남자친구는 과거 자신이 힘들었던 시절 자신을 도와준 모습을 보고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음을 밝혔습니다.


특별히 이날 김연자의 남자친구는 깜짝 프러포즈를 준비해 감동을 안겼습니다. 남자친구를 대신하여 나상도와 박군이 노래를 부르고 강호동과 남창희가 장미꽃을 선물한 것. 김연자는 남자친구의 이벤트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재일교포인 전 남편과는 30년 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2012년에 이혼하였습니다. 벌어 놓은 재산은 한 푼도 못 받았다고 하죠... 


"사실 남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몇 천번 한 적이 있다. 일본에선 저한테 남편밖에 없고 오로지 나 혼자다. 힘들어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이혼하자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때마다 이혼을 안해줬는데 , 어느 날 갑자기 가라고 하더라.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주던 남편이 어느 날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나를 보내주겠다고 나섰다. 그게 반대로 더 슬프고 버림받는 기분이었다. 쫓겨나는 기분이고 더욱 섭섭하게 느껴졌는데, 그제야 남편이 내게 큰 버팀목이었음을 절실히 알 수 있었다. 그제야 남편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새 사랑을 찾았다.


이날 김연자는 자신의 소속사 대표이자 남자친구인 홍상기 대표를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원을 다니며 노래 연습을 했는데 그 때 같은 학원에 다녔던 학생입니다알고 지낸 세월만 50년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김연자의 아버지는 이발소를 운영했고 김연자는 어린 시절부터 손님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게를 도와드렸을 정도로 노래의 소질이 뛰어났습니다.

단골 손님이 오면 아버지는 "연자야 노래 불러라"고 외쳤다네요. 이발소 영업 끝난 후 가게 안에서 1시간동안 전축으로 이미자 노래를 틀고 김연자에게 연습하라 말하고 나가셨다고 합니다. 


경제적 지원은 없었고, 딸 가수 됐다며 학교를 못 다니게 했다고 하죠. 남들은 공부하고 친구들하고 놀 때 자신은 서울에서 노래해야해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었다고 합니다. 너무 빨리 사회인이 돼 청춘이 없었습니다. 김연자는 경제적 가장 역할을 하여 두 동생을 대학에 다닐 수 있게 하였습니다. 물론 나중엔 가수가 되게 해준 아버지께 고마워하고 있답니다.


또 김연자는 중학교 재학 당시 정학 당한 사연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중학교 때 광주에 쇼가 왔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열흘간 지방 순회공연을 따라다녔다. 10일 무단결석에 결국 정학을 당했다. 아버지가 광주에 있어봤자 우리 딸은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 서울에 작은 아버지 사는 곳으로 보냈다. 어렸을 때 저를 서울로 보내주셔서 아버지께 정말 감사하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생계유지를 위해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나이를 속이고 각종 무대에 선 일화를 공개했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미안함에 눈물을 쏟기도. 김연자는 "제가 일본에서 활동을 하던 중, 2008년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근데 저는 연락을 못 받았다"라며 "한국 매니저가 어느 날 전화로 '사실은 열흘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더라. 

김연자는 "아버님 말씀만 하면 제가... 평생 아버님한테 정말 죄송하다. 그래서 제가 몇 년을 울고 지냈다"라고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훔쳤다.

아모르파티로 재기에 성공한 가수 김연자는 1959년생으로 63세입니다. 키는 154cm이고 광주광역시 출신입니다. 광주수피아여고를 졸업하여 1974년에 데뷔를 합니다.

김연자는 한국에서 무명기간이 4년 일본에서 3년간 무명생활을 이어나가고 귀국 후 1년간 활동을 멈쳤습니다. 김연자는 1980년 11월 10일 알잔아요 내 마음을 발표하며 대중에게 자신의 노래를 전달하며 사람들에게 조금씩 알려졌습니다.

이후 한달만에 메들리 앨범을 발표하며 사람들에게 일본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노래를 전달했습니다.


이후 1981년 3월 13일 노래의 꽃다발 3집이 360만장이 팔리며 한국의 메들리 열풍이 일어나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김연자는 일본에서 8090년대 엔카의 여왕으로 불리며 큰 성공을 거두며 일본인에게 사랑받는 가수가 되었고 이후 2010년 이후 국내 활동에 주력하며 현재 젊은 세대도 알 정도로 전국적인 사랑을 받는 가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