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실평수 160평 이상의 전원주택에서 거주 중인 이경애는 "아이가 아토피가 있어서 친환경 전원주택으로 이사했다. 이 집에서 꿈도 많고 행복도 많았고 제 삶의 전체가 들어있다. 제 생명과도 같다"고 전했습니다.

1964년생으로 2021년 기준 한국 나이 58살이 됩니다. 고향은 서울에서 태어났네요. 그녀가 태어났을 때는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한 후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지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계 전선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동생을 데리고 물건을 팔기 시작했지요.

정말이지 힘겨운 시기를 보냈지요. 그래도 학업도 병행하여 학력 송곡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시기에 대학교를 동덕여대를 나왔습니다. 


가정사를 공개했습니다 이경애는 과거 유행어 하나로 광고 20개 찍었다며 "남자를 사랑하는 바보 캐릭터를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넌 내거야' 그 유행어 하나로 먹는 광고는 안해 본 게 없다. H제과 L제과 양쪽 걸 다했다. 화장품 광고만 못해봤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이경애는 어린 시절 판사가 꿈이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포기했다며 "아버지가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술을 먹으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불쌍해보인다더라. 술 때문에 가산을 다 탕진했다. 결국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행상을 나가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술 먹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려서 어머니한테 피가 철철 나기도 했다. 어머니가 자살기도를 5번이나 하셨다. 

그 때마다 어떻게 제가 다 살려드렸다. 마지막은 농약을 드시려고 하는 걸 막다가 저한테 떨어져서 .


그때부터 신장이 안 좋아졌다. 이후에 돈 벌어 올게 편지 하나 써놓고 나와서 18살때부터 돈 버는 것은 다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19살에 개그콘테스트 대상을 받고 화려하게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그는 "개그콘테스트 됐을 때 50만원을 벌면 되게 많이 버는 거였습니다당시 대기업 임원들이 40만원 받을 때였습니다


동생들 학비, 생활비를 다 댔다. 이후에 CF가 터지면서 반지하 살다가 17평, 34평 짜리로 점점 늘어났다"며 "마지막에는 제가 한 달에 1억까지 벌어봤다. 지금으로 치면 50억 될거다. 그 당시 강남 아파트 한 채가 1억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을 누리지 못했다고. 이경애는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그 돈을 뭐했나 모르겠다. 그 돈을 매니저하던 아빠가 다 챙겨갔다 어머니 용돈도 안 주고 아버지가 다 관리했다. 나는 용돈도 일절 안받고 여행도 한 번 안가봤다. 나중에 아빠한테 물어봤더니 주식에 투자를 다 했다고 하더라. 망한 은행에 투자해 다 날렸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집이 두 채가 남았는데 부모님이 아버지는 암, 어머니는 간경화가 와서 두 분 병원비에 이겨낼 장사가 없더라. 자기 보험 하나를 안 들어놨더라. 너무 속상했다. 병원비가 일주일에 870만원이 나온다. 두 채를 다 팔아도 안되더라. 5년을 앓다 가셨다"고 밝혔습니다.


이경애는 "어머니 돌아가시고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엄마 때문에 돈을 벌었는데 돌아가시고 돈은 다 없어지고 그때 처음 절망감을 느꼈다. 매일 엄마한테 전화해서 일상을 이야기했는데 누구한테 전화할 사람이 없더라. 그 때 제일 힘들었다. 맛있는 게 있으면 항상 사다주는데 그걸 사줄 사람이 없고 너무 허전하더라"고 말해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경애는 눈물을 흘리며 엄마한테 영상 편지를 보냈다. 이경애는 "세상에 돈 잃은 건 아깝지 않은데 나 자신이 허물어지는 게 너무 슬펐다. 이겨내면 강해진다던데 날 얼마나 강하게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


나 지금 딸 희서랑 행복하다. 걱정 말길 바란다. 20년 후엔 엄마를 만날 수 있지 않나 싶다. 할 거 다 해봐서 마음이 평화롭고 잔잔하고 행복하니 걱정하지 마라. 항상 사랑하고 아빠한테도 안부 전해달라"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는 딸의 아토피에 대해 "경험안해보신 분들은 모른다. 귀 뒤나 접힌 부분들에서 피가 난다. 좋다는 것들은 다 해봤다. 그래도 안되더라. 간지러워 해서 잠을 못자니까 물을 받아서 그 안에서 같이 자기도 했다"며  "매운 것도 먹으면 열이 나서 안되니까 먹지 말라고 했는데 딸이 장롱 속에 간식을 몰래 숨겨놓은 것을 들켰다. 내 잘못인데 혼내야 할 때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습니다.


첫 결혼에는 안타깝지만 실패했습니다

이경애 결혼 이경애는 27살 나이에 첫번째 결혼을 같은 동네 1살 오빠와 김모씨와 1990년 결혼을 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격차이로 이혼을 한다.


힘겨운 시기를 보내던 어느 날 카페에서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남편 故김용선 님이었습니다. 따뜻한 마음과 다정함에 반해서 재혼을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나이 차이가 14살이 났습니다. 그녀가 재혼 당시의 나이는 32살이었습니다. 건강은 좋지 않았다고 하네요. 다행히 상당한 재력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소회를 했네요.


뒤늦은 재결합으로 아이를 가지기 어려웠습니다. 어렵게 인공수정을 하여 딸을 선물 받았습니다. 제왕절개까지 하면서 어려웠다고 하네요. 안타깝게도 그녀가 8살이 될 시기에 남편과 이별을 했습니다. 그녀의 유일한 혈육이자 가족관계되겠습니다.


이경애 남편 사망 이유는 만성신부전증으로 투병하다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경애는 사별을 겪고 50년 동안 마실 술을 몇 달간 더 많이 마셨다고 고백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