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원로가수 남진을 최근 방송에서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트로트의 인기와 함께 남진이 다양한 트로트 경연 대회에 심사위원 등으로 출연을 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남진은 나훈아와 함께 최고의 트로트 남자 가수 중의 한 명인데요. 오빠부대의 원조격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고, 1970년대를 이끌어가던 한국 가요계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진은 데뷔 50주년을 넘긴 70대인 지금도 현역으로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의 산증인으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남진 나이는 1945년 9월 27일생입니다. 남진 본명은 김남진이며 고향은 목포시 출신이지요. 남진 집안은 상당히 좋은데요. 남진 아버지 김문옥은 제5대 국회의원으로 호남매일신문사 사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남진 학력은 한양대학교이며 데뷔는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를 했습니다. 남진의 특이한 이력 중의 하나가 베트남 참전용사라는 것입니다. 1968년 해병대 청룡부대에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전을 했고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지요.


남진은 나훈아와의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내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초기 3년간은 남진이 내리 3연속 가수상을 타며 나훈아를 완전히 압도했지요. 하지만 1972년 나훈아 피습사건이라는 큰 사건이 터졌고 이로 인하여 남진의 이미지에는 큰 상처와 함께 여러 루머로 고생을 하게 됩니다. 남진은 훗날 라디오스타에 출연을 하여 이에 대해서 해명을 했습니다.


<몇십 년 지나서 안 사실이다. 신성일 선배한테 그 괴한이 제일 먼저 갔다더라. 그 다음으로 저한테 왔다. 아침에 인기척에 눈을 떴는데 머리맡에 모르는 얼굴이 있었다. 괴한이 돈을 달라고 유구했다. 남진은 이를 거부했다면서 당신 라이벌을 해치면 돈을 줄거냐고 말을 하더라. 정상이 아니구나 싶었다>


남진 윤복희 결혼 이혼이유:


남진은 여자가수 윤복희와 결혼을 했고 이혼을 한 사실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윤복희 역시 여자 트로트 원로가수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가수이기 때문이지요.


윤복희는 남진과의 결혼과 이혼이유에 대해서 언급을 하기도 했습니다. <남편 유주용과는 1985년 이혼을 했어요. 남편과 다툰 다음에 홧김에 남진과 결혼을 했어요. 순진한 남자 남진의 마음을 이용한 것이죠>


<어느날 그분이 약혼을 하자며 다이아 반지를 가져왔어요. 그러면 안 됐는데 제가 그 반지를 받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약혼을 하게 되었어요>


무릎팍도사 출연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남편(유주용)뿐인데 나약해진 남편에게 서운했고 홧김에 이혼을 했다. 남편 보라고 고백한 사람이 남진이었는데 그의 순진성을 이용했다.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었다면 이용한 것이다. 그분에게 굉장히 미안했다>


하지만 윤복희는 이로 인하여 남편 유주용과 영영 결별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남진 역시 큰 타격을 받게 되는데, 남진 윤복희 결혼은 1976년에 그리고 이혼은 1979년에 하게 되는데 이혼이유(이혼사유)가 남진이 윤복희를 이용했다. 남진이 윤복희를 폭행했다라는 루머가 퍼졌고 결국 남진은 몇년 동안 해외에서 머물 정도로 마음 고생을 많이 하게 됩니다.


윤복희는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습니다. '첫 남편에게 보여주려고 남진을 이용했다'는 것이었죠.


 무릎팍 도사에서는 가수 은퇴를 막은 첫 남편에게 실망스러웠다 밝혔지만 남진을 이용했던 진짜 이유는 남편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어요.


 윤복희는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일찍 여의고 의지할 데가 없어 생계를 책임져야 할 위치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런 그를 보디가드처럼 지켜 준 것이 바로 첫 남편, 유주용이었어요. 유주용은 서울대 출신으로 엘리트 가수였고 윤복희는 미8군에서 외로이 노래부르는 생계형 가수였죠. 


 유주용은 유복희에게 비타민도 챙겨주고 앙드레김 패션쇼에 데려가기도 하며 윤복희를 격하게 아껴 주었습니다. 이 때 윤복희의 나이 14살. 사랑을 시작하기에도, 알기에도 너무 어린 나이였죠. 하지만 소녀의 마음에는 어렴풋이 오빠에 대한 연민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더군다나 유주용의 어머니, 그러니까 윤복희의 시어머니는 윤복희를 마치 친딸처럼 아껴주면서 부모 없는 윤복희의 마음을 채워주기까지 했습니다. 윤복희는 텅비었던 마음을 그 따듯한 마음씨로 인해서 채워가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윤복희는 그 당시, 결혼을 한다면 유주용과 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어린 나이였고 단지 어렴풋한 마음일 뿐이었어요. 


그렇지만 약혼식은 갑작스레 진행되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새 무대위에서 깜짝 약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윤복희는 놀랐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주용을 사랑하기도 했지만 거기서 거절했다가는 모양새가 우스워지고 말았기 때문인 이유도 있었죠. 이 때 윤복희는 성인이었지만 이제 막 고등학생 티를 벗은 21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갑작스런 약혼식은 윤복희를 당황케 했지만 결혼후에는 은퇴하고 싶었던 윤복희였기에 그다음 해 결혼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어린나이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의 아픔이 녹아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미국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면서 윤복희는 일을 그만둘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이미 미국 활동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윤복희였고 그 기회를 날려버리길 남편이 바라지 않았어요.


오히려 남편은 윤복희를 위해 자신이 발벗고 나섭니다. 그저 뒷짐지고 바라만 보고 있지 않고 가수 활동을 모두 접은 후 윤복희의 매니져로 나선 것이지요. 윤복희는 예전 한 아침 방송에 출연해서 '그가 나를 위해 많이 희생했다'고 밝힙니다. 자신의 꿈을 접고 아내를 위해 발벗고 뛸 수 있는 남편은 흔하지 않은 것이었으니까요. 그 시대라면 더더욱 그랬구요.

 그러나 윤복희는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이제껏 생계를 위해 일해 왔는데 결혼 후까지 생계를 책임지는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요. 윤복희는 유주용에게 '가수를 그만 두면 안되냐'고 묻지만 유주용은 그를 반대했습니다.


 이렇게 의견차이가 생기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둘의 사이는 점차 악화일로를 걷게 됩니다. 하지만 윤복희는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자신의 남편이자 아버지였고 오빠인 그를 버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러나 스캔들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높은 인기를 자랑하던 윤복희였기에 남진과의 그 스캔들은 가십거리로 꽤나 인기가 높았지요. 이 때 결정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유주용이 남진과 윤복희와의 스캔드를 믿고 있었던 것이지요. 윤복희는 그 스캔들 자체보다 유주용이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결혼을 했다고는 하나 그 당시 윤복희의 나이는 겨우 스물 여섯. 윤복희는 그동안의 스트레스와 남편의 의심을 해결할 방법으로 이혼이라는 비책을 꺼내듭니다. 윤복희는 "뭐 어디가 어때? 와, 괜찮네. 이 친구랑 산다는 건데"라며 남편에게 비수를 꽂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잘못을 빌고 자신에게 다시 기회를 달라고 말할 줄 알았지요.

 허나 역시 지칠대로 지치고 자존심마저 다쳤던 유주용은 그 이혼을 허락해 버리고 맙니다. 윤복희는 그런 유주용이 미웠고 정말로 남진에게로 가버렸던 것이에요.


 유주용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미워할 수 밖에 없었던 윤복희는 그 애증을 잘못된 방식으로 풀어 냅니다. 어린나이에 가장이 되어서 한 남자만 보고 살아왔던 인생에 대한 반항심이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윤복희는 진짜 사랑은 남진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6개월만에 이혼을 합니다.


 두번의 이혼이었지만 진정한 사랑은 첫번째 뿐이었죠.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새 휩쓸려 버린 결혼과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결혼생활은 윤복희가 그 사랑을 제대로 바라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윤복희는 결국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흘러가버리는 바람에 방향을 잃고 자신이 한 선택으로 두 남자를 상처 주고 말았습니다. 남진은 스캔들로 시달리게 만들었고 남진과의 결혼으로 유주용은 충격에 빠트리고 말았지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두 남자에게 주고야 만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 가장 다친 것은 윤복희 자신이었습니다. 윤복희는 결국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면서 자신의 심장을 찢어내는 행동을 했던 것이었어요.


  윤복희는 골방에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런 윤복희를 위해 오빠인 윤향기가 노래를 작곡해 주었어요. 그 노래가 바로 그 유명한 여러분이라는 노래였죠. 그 노래로 윤복희는 재기했고 한국 뮤지컬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아픔을 딛고 자신이 만든 굴레에서 벗어난 윤복희씨, 이제는 조금 더 편하게, 유하게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실 수 있기를 빌겠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윤복희는 남진에게 죄가 없음을 밝혔고 본인의 잘못으로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고 사과를 하게 되지요.


남진은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그리고 잘생긴 외모, 뛰어난 노래실력뿐만 아니라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최고의 레전드 가수로 현재에도 활동을 하고 있지요. 윤복희가 자신을 이용했다가 버릴 때에도 아무 말하지 않은 남자다움을 보여주었고 베트남에서 목숨이 달린 전투를 치루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남진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좋은 노래를 많이 들려주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