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선수를 보면 참 의지나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작은 운동장 조금뛰어도 다리가 터질거같고 숨이 헐떡거리는데 그 엄청난 고통을어찌그리 참으면서 오래뛰시는지 대단해요.


우리나라에는 참 많은 마라톤 선수들이 있지만은 이봉주 선수를 모르시는 분들은 없을거에요.

대한민국 육상레전드이자, 예능새싹으로 떠오르고 잇는 이봉주! 

국민적인 영웅으로 다양한 세계무대에서 한국인의 긍지와 투지를 보여준 스포츠스타이죠.


그리고 여러 프로그램을 보면 정말 뼈를 깍는 노력을 하시더라구요.


배울점이 참 많다는 생각이듭니다.


이런 이봉주씨가 라디오스타에서 출연해서 입담을 보여주신다고해요.

이제 운동선수는 은퇴하시고 제2의 삶을 산다고 하시는데요.

예능이라던지 연기까지 노려보고 계시다고 하며끼를 발산 하실 예정입니다. 라디오스타에서 노래도하신다고해요.

그리고 이봉주씨의 가슴아픈 사연이자 참마음이따뜻한 사연이 공개가되었었는데요.


알고 보니 이봉주 가족에게는 숨겨진 사연이 있었답니다. 14년 전, 이봉주 아내의 오빠가 덤프 트럭 운전 도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봉주가 7년 전 조카를 집으로 데려와 친아들처럼 키워온 것이랍니다.


이봉주의 아내 김미순은 “덤프 트럭 사고 이후 남편이 조카를 보면 너무 안쓰러워하고 마음 아파했다”라고 전했답니다. 이어서 “어느 날 남편이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자신이 조카를 챙겨줘야겠다고 먼저 말해줘 정말 고마웠다”고 밝혔답니다.


이봉주씨는 담담하게 말씀하시면서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것이다.


그 어린아이가 혼자 있는데 어찌 그렇게 안하겠느냐 라면서 담담하게 말씀하셨어요. 정말 인성이 멋지신 분인거같습니다.


당시 저렇게 어린 아이들이 이제 커서 대학생이 된다고 하니 이봉주씨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정말 장성한 아들들을 보며 하루하루 뿌듯 하실것 같아요.


대인배라는 생각이듭니다. 정말 멋지신거같아요. 


그리고 이봉주씨는 이전부터 살짝 나이들어 보이는 외모탓에 노안 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요.


무한도전 못친소2에서도 압도적인 외모로 못친소 패밀리들과 합을 겨루었죠.


그렇게 많지는 않은 나이이신데 마르고 머리숱이 없으시고 수염 때문인지 더 들어 보이시는거같아요.


70년 10월 10일 충청남도 천안시에선 태어난 그는 올해나이 50세로 학력은 광천고를 나와 서울시립대 무역학 학사출신입니다. 


광천고등학교 1학년 때 육상 장거리에 입문했습니다.1990년 제71회 전국 체전 준우승에 이어, 같은해 1991년 제72회 전국체전 마라톤 종목에선 우승한 후, 1993년 제74회 전국체전에선도 2시간 10분 27초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2002년 4월 결혼을 하였는데요 황영조 생일때 황영조의 중매로 만나 결혼을 하였답니다.


두 사람은 결혼해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는데요. 큰 아들 이우석군은 과거 '붕어빵','둥지탈출'에 출연해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1991년 대한민국 마라톤의 대부로 알려진 정봉수 감독의 끈질긴 권유로 `코오롱 사단'에 입단한 이봉주는 1992년 1월 도쿄 국제 하프마라톤 대회에선 대한민국 최고 기록을 수립하며 4위로 골인하며,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선발전에선 레이스 도중 넘어져 출전을 포기하고 말았지만. 1993년 12월에 열린 하와이 호놀룰루 국제 마라톤 대회에선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 대회로 나섰는데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은메달을 획득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라톤의 슈퍼스타로 우뚝 섰다. 안타깝게도 금메달[조시아 투과니]과는 3초 차이였는데요, 이것은 역대 최단 격차였습니다. 같은 해 12월에 열린 후쿠오카 국제 마라톤 대회에선 우승을 차지하였고, 이 대회에선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다르게스트인 아프리카 남아공 출신의 조시아 투과니는 진눈깨비가 열리는 일본의 영하 날씨에 적응을 못하여 기권을 하게됩니다. 이후 1998년 4월에 열린 로테르담 국제 마라톤 대회에선 2시간 7분 44초의 한국 신기록으로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같은 해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 출천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 1999년 정봉수 감독과의 갈등과 '코오롱 사단' 의 부당한 처우에 반발하며 탈퇴해 은퇴설까지 나돌았으나. 무소속으로 출천해 2000년 2월 13일 도쿄 국제 마라톤 대회에선 2시간 7분 20초로 대한민국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시드니 올림픽에선은 레이스 도중 넘어지는 바람에 24위로 뒤졌습니다. 이 안타까운 성적은 자신으로서도 가장 아쉬운 때였습니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쿠오카 국제 마라톤 대회에 다시 출천해 준우승를 차지하였고. 2001년 제105회 보스턴 마라톤에선 한국인으로 51년만에 우승을 차지하였고.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선 아시안 게임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계속돼는 부진과 발바닥 부상으로 선수생활에 위기를 맡지만 2007년 서울 국제 마라톤[동아일보 주관]에선 역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단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선은 28위로 뒤졌습니다.


결국 대한민국 나이로 40세가 된 2009년 10월 21일, 제 90회 전국체전 마라톤 대회에선 2시간 15분 25초 만에 완주해 1위로 결승점을 통과하며 우승함과 동시에 현역에선 은퇴하였습니다. 만 39세의 나이로 그의 은퇴 경기이자 41번째 완주를 웅장하게 마무리했습니다.


2009년 12월 8일 역도의 장미란 선수와 같이 체육인으로써 받을 수 있는 최고에 훈장인 청룡장을 수상하였습니다. 이봉주는 2009년 은퇴한 후 마라톤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대한육상연맹 홍보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마라토너로서 서른살 이후 찾아온 슬럼프에선 다시 일어났으며, 44번을 도전해 41번을 완주한 엄청난 끈기, 평발+짝발을 극복했습니다는 점 등이 높게 관심되었습니다.


현재 2017년 3월부터 영남고등학교 홍보대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8년 체육대회 때 이봉주를 이겨라라는 종목에선 한 명도 이봉주 선수를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한편 이봉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봉주 재산과 연금 수령액등도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이봉주는 과거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수입에 대해 밝힌 바 있습니다. 


'한 달에 얼마 정도 버느냐'는 질문에 이봉주는 ' 연금이 매달 들어오고 있다' 고 말했는데요.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바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올림픽 연금은 금메달은 90점으로 월100만원, 은메달 7점 월75만원, 동메달 40점 월52만5천원 인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올림픽 금메달 10점당 500만원의 일시금이 지급되며 올림픽 2연패시 50%의 가산점이 있다고 합니다. 


이봉주는 아파트와 땅,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와 관련, 이봉주 아내 김미순씨는 '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모았다' 고 재산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또한 이봉주의 전 소속팀 관계자는 한 인터뷰에서 '이봉주 연봉이 부장급과 임원급 중간쯤이다. 메달리스트 연금도 있고, 예전 한창 주가를 올릴 땐 대회 출전료만 1억원 이상이었다'고 언급했으며 '정확한건 모르지만 50억~100억원 정도라고 들었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