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사망에 얽힌 진실을 밝힌다.
뭔가 수상한 음모가...(?)

2020년 7월 8일 오후 박시장 비서 A가 박원순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장을 경찰서에 접수 같은 날 경찰은 고소인을 밤늦도록 수사

2020년 7월 9일 새벽 청와대로부터 자신이 미투 사건으로 고소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박원순은 그날의 일정-국회의원들과의 모임과, 지역균형발전대책회의 등-을 모두 취소하고 아침 10시 43분 경 등산 차림으로 가회동 관저를 나선다.

2020년 5시 17분 박 시장 딸 박다인으로부터 경찰 112로 걸려온 실종신고는 서울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하였다. 아버지가 10시 43분 경 집을 나서며 “ 내 전화로 연락이 안되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라”고 한 말은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협박을 받고 집을 나가며 여차하면 신고를 당부한 말로 들렸다.

간간히 아버지와 통화하며 걱정을 하던 딸은 4시부터 5시가 넘도록 통화가 되지 않자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CCTV를 검색하여 10시 53분 와룡공원 근처에서 걷고있는 박시장을 포착하고, 대책회의를 열고 5시 30분 경찰 기동대와 소방대원 770여 명을 동원하여 와룡공원 (길이*폭 100*200미터 )을 수색하였다. 저녁 6시경 박시장의 시신을 발견하였고 현장 감식을 하기 위해 감식반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6시 45분 이미 카톡 등을 통해 와룡공원에서 박시장 변사체 발견됐다는 소식이 퍼지고 있었다.

감식이 끝나고 어두워질 무렵 시신을 실은 구급차는 근처 서울대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고 담당의사가 사망했음을 확인하였다.

9시경 인터넷 상에는 박원순 숨진 채 응급실 도착, 부검지휘 대기 중, 언론 엠바고, 대통령 결재 대기 중이라는 글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글은 서울대 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가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시 22분에는 경찰, 서울대병원 영안실 예약이라는 글도 올라왔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박원순 사체는 6시 이전에 와룡공원에서 발견되었고 8시에서 9시 사이에 서울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부검 대기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로는 770명이 넘는 경찰 병력이 밤새 시신을 찾다가 다음날 0시 01분 숙정문 근처 성곽길 옆 5-6미터 들어간 숲속 나무에 넥타이로 목을 맨 채 숨져있는 박원순처럼 보이는 사람을 소방수색견이 발견했다고 한다. 칠흙같이 캄캄한 밤에 인적 드문 깊은 숲속에서 시신을 찾아낸 것도 용하지만 언론에서는 어떤 기자도 박시장의 시신을 확인한 사람이 없다.

7월 10일 새벽 2시 서울경찰청 형사과장 최익수의 수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박시장의 시신은 7월 10일 0시 01분 북악산 숙정문 근처 성곽길 근처 숲속에서 소방대 수색견에 의해 발견되어 감식 중이라고 하였고 박시장 본인과 가족의 명예를 생각하여 상세한 현장 상황이나 사인은 발표하지 않겠다고 하였고 현장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하였으므로 지금까지 어떤 기자도 사체를 확인한 사람은 없다. 경찰도 발견 현장에서 가방과 약간의 돈, 물통, 안경, 휴대폰과 본인 명함으로 박시장임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시신으로 박시장을 확인할 수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 과장은 말을 더듬으며 분명히 말하지 못하였다. 처음에 최익수 과장은 박 시장이 공관을 나와 와룡공원까지 보도로 이동하였다고 발표하였으나 부하직원의 귀뜸을 듣고는 바로 택시로 이동한 뒤 와룡공원에서 내려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정정하였다. 캄캄한 밤에 얼굴이 훼손된 시신이 박시장이었는지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감식이 언제 끝났는지 폴리스 라인이 설치되었는지 알려진바 없으나 그의 시신은 시신발견장소에서 도로까지 흰 천에 쌓여져 경찰대원에 의해 운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에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는 놀랍게도 소방서 구급차가 아니라 <명성 특수>라는 사설업체 스타렉스 차량으로, 차량번호 5637 구급차였고 여자 운전자가 운전하였다. 그러나 막상 3시 20분 경 서울대 응급센터로 들어선 차량은 남자 운전수가 운전하는 71바 9623 차량이었고 그 차량 뒷문으로부터 흰 천에 싸여 푸른 밴드로 묶인 시신을 빼내 응급실로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시신 발견부터 응급실 도착까지 3시간 20분 가량 걸린 이유는 감식과 잔존 유류품을 확인하느라 지체되었다고 보도되었다.

왜 같은 사건에서 시신 발견시각과 발견장소와 운반 차량이 2개씩 존재해야 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만일 처음 알려진 6시 와룡공원에서 발견된 것이 맞는 것이라면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우선,왜 정부는 6시에 와룡공원에서 발견된 박원순의 시신을 6시간이 지난 시각에 더 깊은 산속인 숙정문 근처에서 발견되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는가? 언론에 알리기 전에 준비해 놓아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박시장의 시신에 총상이나 자상 등 자살로 보기 어려운 흔적이 남아 이를 처리해야할 필요가 있었을까? 두번째 의문은 어떻게 이런 눈속임이 가능하였을까 하는 것이다.

우선 이런 조작이 가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박 시장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된 뒤 자살로 위장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가정을 한다면 이 6시간은 위조 유서를 만들어 놓기에 충분한 시간으로 보인다. 또한 살해한 흔적을 감출 시간도 필요했을 것이다.

만일 숙정문 근처에서 발견된 시신이 가짜였다면 가짜 시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6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건 당일, 와룡공원과 서울대 병원으로부터 기자들의 시선을 돌려놓기 위해서인지 경찰은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긴급 발표가 있다며 기자들을 불러놓고서 허탕을 치게 만들었다. 그 사이에 박 원순 사체를 응급실에서 영안실로 옮긴다고 의사들을 속이고 응급실에 있던 박시장의 시신을 명성특수 71바 9623에 옮겨 실은 후 와룡공원과 서울대 영안실 사이 모처 다른 곳에 숨어 대기하게 하였다. 숙정문에서 발견되었다는 가짜 시신은 와룡공원 앞길에 대기 중인 명성특수 스타렉스 5637 번에 실려 서울대병원으로 가는 척하다가 다른 곳으로 가 버리고 무전으로 연락을 받은 9623번이 대기하던 곳에서 출발하여 다시 서울대 응급실로 들어간 것이었다.
이 6시간 동안 박원순 사체에 남아있는 살해의 흔적을 지워버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적인 변사체 처리 방식이라면 경찰 수사대의 사체 감식 후, 국과수에 넘겨 사체 부검을 요청했어야 함에도 경찰은 이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영안실로 시신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박시장의 사인 무엇이었는지는 확인된 바가 없다는 점도 살해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성추행범이 자살을 하였다면 구체적인 사인이 무엇인지 책임있는 기관의 검시를 통해 발표되어야 함에도 경찰이나 국과수는 침묵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한 권력기관의 횡포로 볼 수밖에 없고 이런 점도 살해 의혹을 더 가중시키고 있다.

경찰 발표에도 의심스러운 곳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박시장이 마지막으로 CCTV로 확인된 것이 아침 10시 53분 와룡공원 근처였다면서 왜 오후 4시 20분 경 거기서부터 직선거리로 1.5킬로나 떨어진 북한산 골프장 근처에서 핸드폰 신호가 끊어진 것인가? 5시간 30분 동안 박시장이 그 근처를 배회하다가 도로를 따라 또 산길을 따라 북악산 쪽으로 올라가 숙정문 근처에서 목을 매었다면 그 사이에 CCTV에 찍혔을 터인데 경찰은 그 영상은 왜 공개하지 않는가?

코로나를 맞아 적극적으로 시정을 펼쳐왔던 박원순 시장이 갑자기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루 일정이 상당히 바빠야 할 서울 시장이 갑자기 실종이라니 황당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배경에 박 시장의 여비서로 성추행 관련 고소장이 접수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더 충격적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어떤 사람인가? 박원순 시장은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여러 사건의 성폭력, 성희롱 사건을 맡아 활동했던 인물이며 특히 ‘서울대 조교 성희롱’사건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도 했었다. 평소 페미니스트로 자처하여 왔었는데 다른 것도 아닌 자기의 비서에게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했다고 하니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정치에 입문하기에 앞서 인권 변호사로 시민 단체 운동가로 명성을 날렸던 그를 많은 사람들은 기억한다. 때묻지 않은 진보 인사였던 그가 서울 시장에 3선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그의 이미지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대선에도 도전을 했지만 뜻을 꺾어야 했는데 사실 아직 그 도전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정치란 생물이기 때문에 코로나를 거치며 그가 재도약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그는 본인의 전 비서로부터 성추행 고소가 들어오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기의 삶마저 내던지는 선택을 하고 만다. 여비서는 구체적인 증거도 있음을 밝히며 거짓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한 것 같은데 사실 여부를 떠나 인권 변호사 출신 박원순 시장에게는 그 자체로 치명적인 중압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 같다.

극적이었던 서울시장 선거 참여, 안철수는 조문하지 않기로 했다.
당사자가 사망함으로써 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다고 한다. 형사 사건의 피의자 당사자가 세상에 없으니 죄를 더 이상 따지지도 규명할 수도 없다는 것인데 그런 만큼 이 사건은 앞으로 거센 논란과 후폭풍이 예상된다. 진실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검찰은 이대로 수사를 종결했으나 진실까지 덮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정황상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일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박원순 시장 측에서도 당당하게 결백함을 내세우고 상대에게 무고죄를 물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는데 그냥 이렇게 끝나 버린 것이다. 그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공적과 과거는 이제 덮어지고 씁쓸한 뒤안길만 남긴 것이다.

그러니 고 박원순 시장의 조문과 5일장을 놓고 논란이 거세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업적이 많았던 전 시장에게 ‘5일장 서울특별시장’으로 진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그가 결백함을 증명하고 떳떳하게 마무리를 짓지 않고 이렇게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여론은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일각의 주장대로 조용히 가족장을 치르는 것이 더 옳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괜히 논란만 더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망자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겠지만 피해자로 추정되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예의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민주당 출신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으로 이어지는 추문의 끝은 어디일지 답답한 마음이 든다. 이러면서 어떻게 사회의 정의를 논할 수 있는지 집권 세력의 자만심을 그만 내려놓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