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과 엄앵란은 과거 연예계를 대표하는 연예계 커플입니다. 그 이유는 신성일이 과거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대스타였으며, 엄앵란 역시 많은 남성들의 사랑을 받는 여배우였기 때문입니다. 톱스타 배우들의 만남은 대중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으며, 두 사람의 일상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신성일은 현재 강신성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신성일 본명은 강신영이지요. 신성일 나이는 1937년 5월 8일생이며, 고향은 대구 출신이지요.

신성일 배우자 엄앵란, 딸 강경아 강수화, 아들 강석현, 조카 강석호가 있습니다. 신성일 학력은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입니다. 신성일 데뷔는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를 했지요.


엄앵란 나이는 1936년 3월 20일생입니다. 엄앵란 고향은 서울출신이며, 가족은 배우자 강신성일, 딸 강경아, 아들 강석현, 딸 강수화가 있습니다. 학력은 숙명여자대학교 가정학 학사입니다. 엄앵란 데뷔 1956년 영화 <단종애사>로 데뷔를 했습니다.

엄앵란 유방암으로 고생을 한 적이 있는데요. 건강프로그램에 출연을 하면서 이곳에서 유방암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행히 지금은 완치한 상태라고 하네요.

신성일 엄앵란 결혼스토리.

신성일 엄앵란 결혼은 1964년 11월 14일에 올리게 됩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엄청난 화제가 되었는데요. 당시 두 사람의 결혼식을 보려고 전국에서 몰려든 팬들이 3천 4백명에 달했습니다. 당시 워커힐 호텔이 사람들로 붐벼 발 딛을 틈이 없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신성일의 여성편력은 상당했으며, 결혼을 할 때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신성일은 결혼 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불륜(신성일 바람)으로 많은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혼을 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두 사람은 일명 졸혼을 하게 된 것이지요. 신성일 엄앵란이 이혼하지 않았던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엄앵란 신성일 졸혼이유 이혼하지 않은 이유는!

신성일의 반복적인 외도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두 사람은 이혼하지 않았습니다. 엄앵란은 처음에 신성일 외도 사실이 뻥인줄 알았다고 하지요. 또한 엄앵란은 신성일을 아들처럼 여기는 마음도 있다고 합니다.

"성일시네마를 차렸을 때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나는 저 남자 신성일을 더 멋있게 만들고 싶다. 더 근사하게 만들어서 남들 앞에서 아주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서게 하고 싶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이혼 루머가 아주 많았다. 신문에서 보도한 대로 이혼했다면 우리는 50번 넘게 이혼을 했을 것이다. 우리 부부가 결혼을 할 때에 이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악착같이 죽을 때까지 같이 살 것이다:

"사실 남편이 보기 어리석은 면이 있다. 요즘 세상은 자신을 자꾸밀고 포장하는 시대인데, 스스로 상처입을 짓을 했다. 신성일은 배우 김영란과 불륜을 고백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한 때 신성일이 노망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이혼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엄앵란의 영향이 상당히 컸다고 할 수 있는데요. 신성일의 외도와 불륜에도 잘 참았고, 자신의 끝까지 가정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성일은 방송에서 엄앵란과의 졸혼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법적으로 이혼을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각자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성일이 졸혼을 한 것 역시 엄앵란의 힘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으며, 이제는 남은 인생을 좀 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졸혼을 결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두 사람의 졸혼 생활은 1978년 레스토랑을 하면서부터 였다고 하는데요.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전에 신성일 엄앵란의 결혼 생활은 끝났다고 할 수 있지요.

신성일은 경북 영천에 지은 집에서 오죽을 심고 금붕어와 풍산개, 칠면조를 기르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참 재미있기도 하면서 아직까지 법적 부부로 살아가는 모습도 참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미남으로 소문난 그는 맨발의 청춘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엄앵란과 결혼했다. 이 엄앵란과의 결혼식은 당대 최고 톱스타 둘의 결혼이라 어마어마한 화제가 되어 이 결혼식을 구경하기 위한 인파가 운집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심지어 이를 노리고 지방에서 전문 소매치기단까지 같이 상경했다가 잡힌 게 뉴스가 된 적이 있다.하지만 많은 여자와 불륜 관계를 맺었으며, 그 과거사를 자서전으로 써낸 적이 있었다. 2011년 발표된 이 자서전에서 자신의 엄청난 과거사를 여과없이, 그것도 상대 여성의 신상을 숨기지 않고 공개하여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사실 동시대 배우들의 회고록이 90년대 이후 발굴되면서 나름 화려했던 경력들이 공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신상옥 감독의 예처럼 본부인에게 잘못했다는 식의 이야기로 덮거나, 최은희처럼 본인에게는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일이지만 밝히거나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이전에도 엄앵란은 시사 프로에 나올 때마다 "요즘 여자들은 너무 쉽게 이혼한다. 참고 살아야지. 나라면 5, 6번은 이혼을 해야 했다."는 발언을 수시로 하였는데 그게 사실이었다. 신성일의 자서전 공개로 엄앵란은 보살의 영역에 이르렀다.그나마 2018년 현재에서는 완전히 별거 상태이다. 참고로 MBC 프로그램인 사람이 좋다에 출연한, 신성일의 막내딸(이름은 강수화)은 엄앵란에게 '아버지에게 애인이 생겼으니까 완전히 이혼하자.'고 말했다. . 또한 '둘은 결혼해서는 안 되는 사이였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그는 부부는 별개의 인격체라며 자신들처럼 사는 것이 미래 지향적인 부부의 모습이고 불륜 공개에 대해 엄앵란에게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발언을 했다. 이후 Y-STAR와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불륜 폭로 발언이 자신의 자서전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욕심에서 나온 행동이었다며 엄앵란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2016년 부인 엄앵란이 건강프로그램 촬영 도중 유방암이 발견되어 수술 및 치료의 일련 과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아내의 입,퇴원과 뒷바라지 전부를 손수 맡으며 그 동안의 행보에 대한 논란이 어느정도 사그러진 것과 동시에 중, 노년 시청자들의 애증어린 공감을 얻었다는 평을 받았다.


2017년엔 폐암 3기인 것이 밝혀졌을 당시에는 위로의 댓글보다는 그의 행적에 대한 비판 및 비난 댓글이 상대적으로 많았으나, 2018년 11월 4일, 사망 소식이 기사화가 된 이후에는 고인에게 조의를 표하고, 아내인 엄앵란과 가족에게 위로를 표하는 댓글이 훨씬 더 많았으며, 고인의 행적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자중시키는 댓글들도 주류를 이루었다.

고인의 죽음 후에, 고인이 투병 중, 엄앵란과 신성일의 발언이 다시 회자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엄앵란 "우리는 동지, 멋있게 죽어야 돼", 신성일 "마지막까지 엄앵란과 함께 하고 싶어"

배우 신성일이 고(故) 김영애 씨를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김영애 씨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재원으로 동아방송 아나운서 출신이다. 1944년 출생으로 1985년 교통사고로 41세에 세상을 떠났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며 동아연극상 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김영애 아나운서의 언니는 공군 여성 비행사 출신으로 유명한 대한민국항공회 명예총재인 김경오 씨다. 김 씨의 딸 이보영 영어강사는 김영애 아나운서의 조카인 셈.

신성일은 그녀와 1970년 처음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 신성일은 김영애 씨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 낙태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