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는 숙명여자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교사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 1963년 동아방송 성우 1기로 데뷔했습니다. 1972년 TBC 탤런트로 데뷔하죠.

전원주는 사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사별을 겪었습니다. 전원주는 어머니가 원했던 서울대 남자와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인물 좋고 집안도 시아버지가 치과 의사였을 정도로 좋았다고 해요. 근데 결혼 후 알고보니 남편이 기침하는데 피가 계속 나왔다고 해요. 심지어 폐결핵 환자였다고 합니다.


무조건 잘생기고 집안 좋다고 서두른 결혼에 미처 건강 상태를 확인하지 못한것이죠. 결국 남편은 전원주를 먼저 떠나버리게 됩니다. 돌쟁이 아들과 남겨진 전원주는 결혼 3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결혼을 강행시켰던 전원주의 어머니는 과부가 된 미안한 마음에 내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장담했다고 해요.

스물아홉이었던 전원주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게 됩니다. 친구의 아기 돌잔치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첫눈에 반해 두 번째 결혼을 결심한 것이죠. 남자도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에 동거부터 시작했다고 해요. 성이 다른 두 아들과 함께 네 사람은 미아리 공동묘지 쪽에 5만원짜리 사글셋방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전원주의 고집에 그의 어머니는 결국 백기를 들었죠. 어렵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곤 화끈하게 허락을 했고, 두 사람을 위해 집도 사주고 땅도 사줬다고 합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두 번째 남편은 돈을 쓰기 좋아하고 놀기 좋아했다고 해요. 알보보니 남편에게 파주에 여자 셋이 있다는 소문이 들렸던 것이죠. 심지어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저 사람이 불륜 상대다`라고 말해줬다고 합니다.

바람기보다 힘들었던 게 있었는데요. 여자의 일부종사가 당연시되던 시절에 아들에게 재혼으로 상처를 줬다는 사실이었죠.


더욱이 연기자로서 성공해야 한다는 욕심에 바쁘기도 했고, 낳은 자식만 예뻐할 수 없어서 둘째 아들을 많이 안아주지도 못했다고 해요.

낳은 자식과 기른 자식에게 상처가 될까봐 여섯 번이나 낙태를 하면서 자식을 낳지 않았다고 해요. 다른 자식이 생기면 불행해 질 것이라는 생각때문이죠.

낙태를 하고 나서 두 달 이나 석 달 후에 또 낙태 수술을 하기도 했었다고 해요. 계속되는 시술에 몸도 나빠졌는데요.

그럼에도 전원주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합니다. 재혼 가정으로 성이 다른 두 아들, 또 다른 아이를 둘 수는 없었다고 하네요.


전원주와 첫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고재규 씨는 연기 생활로 바빴던 어머니를 대신해 친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재혼한 어머니와 살았다고 하죠.

당시 여자의 재혼에 편견이 심했던 시절, 고재규 씨는 학창 시절 내내 감당하기 힘든 고통 속에 살았다. 자신의 성씨가 아버지, 형과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가슴 졸이며 늘 고통 속에 살았다. 또한 연기 생활로 바빴던 어머니 때문에 심한 모성 결핍을 겪었고,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 낳은 자식과 기른 자식을 모두 뒷바라지했고, 자식에게 준 상처를 돈으로라도 보상하기 위해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