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니 윤은 8일(현지시간) 오전 4시께 미국 LA의 한 요양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4세. 뇌출혈을 앓고 있었던 그는 별세 나흘 전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일어나지 못하고 안타깝게 눈을 감았습니다.



자니 윤과 함께 LA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투병생활을 돕는 등 마지막까지 고인과 함께했던 현지의 지인 임태랑 씨는 10일 스포티비뉴스와 국제전화에서 "2016년 뇌출혈 이후 4개월 만에 미국으로 건너와 4년간 투병했습니다.

지난 4일 갑자기 혈압이 낮아져 입원했고, 나흘 만인 지난 8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며 고인의 마지막을 되짚었습니다.

임씨는 "시신은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UC어바인에 기증됐습니다.

마지막까지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뜻이 있어 이미 수년 전 대학에 기증 의사를 밝혔는데요.

추후 조용히 장례를 치를 것"이라며 "마지막까지 좋은 뜻이었는데, 친지나 가족, 팬들 입장에서는 바로 장례를 치르고 위로하거나 할 수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고 털어놨습니다.

고 자니윤은 미국과 한국 토크쇼에서 큰 족적을 남긴 전설적 방송인으로 이미 유명한대요.

1936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자니윤은 미국에서 유학했고, 현지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로 명성을 쌓으며 당대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NBC '투나잇쇼'에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고정 출연했습니다.



이같은 인기를 바탕으로 이후에는 NBC '자니윤 스페셜 쇼'로 자신의 이름을 딴 프로그램까지 이끌었습니다.

1989년 한국으로 돌아와 '자니윤 쇼'를 진행하며 또한 반향을 일으켰다. 2014년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됐고, 임기 만료를 앞둔 2016년 뇌출혈을 일으켜 이후 미국에서 투병생활을 이어 왔습니다.

임씨는 고 자니윤에 대해 "한국과 미국 방송계 모두에서 큰 족적을 남긴 대단한 방송인이자 인기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외국인이 이름을 날리기가 쉽지 않고, 예전에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한국 K팝이 지금 큰 인기지만 자니윤은 그 시절 K컬처의 선두주자, 전설이나 다름없다"고 돌이켰습니다.



이어 "선하게 살아 온 사람이다. 뇌출혈로 오랜 시간 투병했고, 동생 외엔 가족과 왕래가 없다시피 해 외롭게 떠난 것이 안타깝다.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셨다.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빈다"고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약했으며, 1989-1990년에 '자니윤쇼'로 한국 방송 전체에서 최고 MC로 대접 받기도 했는데요.

본명은 윤종승. 미국식 이름은 'Johnny Yune'이다. 국적회복을 통해 현재 미국과 한국 복수 국적자입니다.



1936년 10월 22일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 1959년에 대한민국에서 방송인으로 데뷔한 후 한동안 MC생활을 하였으나, 1962년에 해군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제대 후에도 그냥 미국에 눌러앉아 알바를 무려 세개씩이나 하며 공부를 한 끝에 오하이오 웨슬리안 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했습니다.

1964년부터는 뉴욕에서 무명 MC 겸 코미디언 생활을 했는데, 이미 그때부터 뉴욕의 '텔 아비브'라는 카페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탠드업 코미디 양식을 개발했으며, 이때부터 그의 스탠드업 코미디는 미국인에게 먹힌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합니다.

자극적인 소재나 욕설, 폭력 등의 천박한 방법을 하나도 쓰지 않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동양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비하, 성적 풍자, 정치풍자 등을 간결하게 툭툭 던지고 넘어가는 식으로 미국인들을 엄청 웃게 만든 것입니다.



이 인기로 인해 자니 윤은 고국에서도 스타덤에 올랐고 광고를 여러 개 찍기도 했습니다. 자니윤 쇼로 한국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졌을 때의 나이가 이미 50대 중반이었습니다.



1999년에는 예순넷의 나이로 18세 연하의 줄리아 리와 결혼했으나, 2010년에 이혼한 바 있구요.

2014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되었다. 이 과정에서 적절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2016년 말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 의해 폭로된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