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규가 죽은 아들이 듣게끔 수상소감으로 노래를 했다고 밝혀 감동을 줬습니다.


지난 3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 4’에서는 박영규가 게스트로 출연했습니다.  이날 방송에는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 특집으로 배우들이 함께 출연해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박영규와 박해미가 한자리에 모인 만큼 대한민국에 한 획을 그은 레전드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와 ‘거침없이 하이킥’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요즘 학생들에게도 ‘미달이 아빠’라고 불린다는 박영규는 희대의 유행어인 “아이고 배야” 가 애드리브 하나 없는 대본의 대사라고 밝혔고, 박해미는 ‘해피투게더 프렌즈’ 출연했을 때의 모습 덕분에 ‘거침없이 하이킥’에 캐스팅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박영규는 1953년 10월 28일생으로 67세입니다. 서울 예술대학교 연기학과를 전공했습니다. 박영규는 지질한 개그 캐릭터부터 중후한 사극 연기까지 스펙트럼 한 연기파 배우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을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낸 박영규는 15살에 신문을 돌리다가 불도그에게 물린 뒤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학교 담임선생님의 “넌 훌륭해질 거라고 선생님은 믿는다.”란 말을 듣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성악가를 꿈꿨으나 경제적 사정 때문에 포기하고 술집 웨이터, 책 외판원 등의 생활을 하다 서울예전에 입학해 배우의 꿈을 키웠습니다. 박영규는 연극배우로 소극장에서 13년 동안 활동하며 너무 고생을 하여 폐결핵을 앓았고, 체중이 42kg까지 줄어 뼈밖에 안 남아 사람의 얼굴이 아닐 정도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1984년 1월 6일 방영된 MBC 베스트 극장'초록빛 모자'에서 서갑숙과 함께 출연해 자연스러우면서도 힘 있는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이름을 알렸으며, 1985년 영화 '별리'로 스크린에 데뷔했습니다. 1986년 MBC 특채 텔런트로 선발되어 활동했습니다.

박영규는 서울 무지개, 라이터를 켜라, 서울 무지개, 나는 왕이로소이다 등의 영화와 초록빛 모자, 내일 잊으리, 폭풍의 계절, 순풍산부인과, 다모, 해신, 백 년의 유산, 오로라 공주, 등의 드라마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박영규 시트콤의 대표작은 바로 '순풍 산부인과'입니다. 미달이 아빠 "박영규" 역할을 맡은 뒤로는 기존의 엄숙하던 모습에선 얍삽하고 이기적이며 사고와 민폐를 잘 끼치면서도 되게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를 맡아 코믹한 이미지로 변신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순풍산부인과가 방영되고 2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린 학생들이 자신을 미달이 아빠라고 부르며 알아본다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동영상 사이트에서 레전드 시트콤으로 회자되며 순풍산부인과의 인기가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1989년에는 앨범'카멜레온'을 발표했으며, 하루 12개의 행사에 참석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박영규는 폐결핵을 앓던 시절 지극히 간호해 주던 서울예대 5년 후배와 처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1983년 결혼했습니다. 장인 장모는 이북분들이었으며, 당시 평화시장에서 장사를 했었다고 합니다. 이때 낳은 아이가 박영규의 유일한 아들 '박달'입니다.


하지만 약 13년의 결혼생활을 하던 박영규 부부는 서서히 멀어졌습니다. 박영규의 전부 인은 '아이와의 조기 유학'을 원했고, 미국으로 아들과 아내를 보냈으나 사실상 별거였다고 합니다. 결국 아내와 아들이 미국에 있을 당시 1990년대 중반에 이혼을 했습니다.


이후 박영규는 3살 연상인 최 모 씨와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영규의 부인 직업은 디자이너였으며, 당시 톱으로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디자이너였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부인이 암에 걸렸고, 부인이 먼저 이혼을 요구하면서 2005년 초 두 번째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박영규가 전처의 병간호를 헌신적으로 했는데 일부 언론에는 전부 인을 완치시킨 다음에 이혼한 것으로 와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박영규는 2004년 미국에서 박영규 전 부인과 함께 유학생활을 하던 아들 박달이 교통사고로 잃는 큰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당시 22살이었던 박달은 친구 오토바이 뒤에 탔다가 그만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큰 충격을 받고 삶의 희망을 잃은 박영규는 잠정 은퇴를 하고 캐나다로 떠나 6년간을 보냈습니다.


2010년 박영규는 MBC '황금어장-무르팍 도사'에 출연해 "2004년 3월 13일 아들이 교통사고 당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놓을 수밖에 없는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다"라고 털어놨습니다.



당시 박영규는 "아들을 잃고 나서 한 번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라며 "이 세상에 태어난 게 후회됐다. 한때 자살도 생각했다"라고 눈물 고백을 했습니다. 이어 "내가 죽는 게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슬픔을 딛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2014 KBS 연기대상'에서 '정도전'으로 장편드라마 부문 우수연기상을 받았던 박영규는 수상소감에서 "이런 좋은 날에는 항상 보고 싶은, 하늘에 있는 우리 아들이 생각난다. 하늘에 있는 우리 아들에게 열심히 살아가는 아빠 모습 보여주려고 열심히 살고 있다"라고 말하며 아들을 향한 뜨거운 부정으로 감동을 안겼습니다.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현재의 부인 김수륜을 만나게 되었고 세 번째 재혼을 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2004년 친구의 결혼식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수륜은 정호영의 전처로도 유명했습니다.



정호영은 충남 홍성 출신으로 서울고 재학시절 중국계 미국인 양부모를 만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일리노이 공대 대학원을 졸업한뒤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군수 관련 산업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현재 방위산업체인 한국레이컴 회장을  맡고 있는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호영은 현재 이영애와 스무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2009년 미국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린뒤 2011년 이란성 쌍둥이 승권, 승빈을 얻었습니다.


김수륜은 박영규가 힘들어하고 있을 당시 옆에서 큰 힘이  되어준 사람으로 아들 사고 때에도 많은 힘이 되어주었으며, 배우로서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에 윤박은 "시상식 때 선배님이 아들에게 바치는 노래 부르셨는데 감동 했다”고 말 했고, 박영규는 "알겠지만 내가 아들을 잃었습니다. 나를 빛나게 하면 그 빛이 하늘로 올라가서. 아들이 날 찾기 힘드니까 빛나는 사람이 돼 아들이 쉽게 찾으라고 열심히 일해서 상도 받게 됐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축배의 노래다”고 노래를 한 이유를 설명 했어요.

2004년 아들을 잃고 은퇴까지 선언했던 박영규의 아픔이 엿보인 대목. 하지만 박영규는 "내가 그렇게 노래하는 걸 좋아합니다. 수상소감으로 노래 할 정도면 보통 때 어떻게 하겠냐”고 너스레를 떨며 즉석에서 "그르나다"를 열창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전환시켜 끝까지 웃음을 줬습니다.
아직까지 신식 감각을 자랑하는 박영규가 추억의 "미달이 아빠"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은 가운데 남다른 연기비화와 음악사랑으로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어요.